미술칼럼2013. 3. 8. 04:41

기념비를 통한 폭력의 프레임, 이재훈

 

일반적으로 ‘기념비’는 삶의 지속성을 짧은 단면으로 잘라내거나 죽음의 스토리를 박제하려는 시도와 비스듬히 닿아있다. 그래서 ‘기념비’의 표상은 단편소설집의 ‘표제작’과 같을 것이고 무덤과도 친하다. 작가 이재훈은 이런 ‘기념비’의 도상을 회화의 내러티브로 편성하는 것에 전력을 다한다. 이를테면 고대 로마나 르네상스 시대의 부조 작품들에서 보여졌던 ‘기념비’의 외양이 평면의 회화로 변이,확장되는 것인데, 화면의 구성을 보면 로뎅의 브론즈 작품 ‘지옥의 문’을 떠올릴 정도로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비주얼을 갖추고 있다. 또 외면을 구성하는 서구식 데코레이션이나 회화의 물성을 극대화하는 프레스코 기법 또한 의도했던 시각적 불편함과 정서적 데미지를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내면을 구성하는 그의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필요를 느끼게 만든다. 기독교의 종교적 오만이나 강제적 선교를 빗대었던 “한손엔 성경 한손엔 칼”과 같은 류의 비판적 멍석을 깔아놓고, 다면적인 서사구조를 표면화시키는 이재훈의 연출법은, 그래서 문학적이다.


거대조직으로서의 사회와 그 집단으로부터 오는 폭력의 위험, 전체를 위해 요구받는 희생의 합리화, 그럼으로 인해 노출된 나약한 개인, 그런 사회와의 피치 못할 권력관계,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생물학적 객체들의 비애와 고통, 이 다면적인 목소리를 ‘기념비’라는 프레임을 통해, 혹은 프레스코라는 매체를 통해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곪아서 덕지덕지 떨어져 나간 신체의 부위들은 기념비의 매끈한 아치로 마감되면서, 기념비 자체가 되기도,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로 은유되기도 한다. 전체 기념비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기형적인 객체로 인식되는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 것, 이 지점으로부터 비로서 작가의 목적은 쿨하게 드러난다. 동시에, 그 안에 품은 이야기들은 처절함을 통한 시적인 은유를 제공하는 것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현실과 자기 정체를 더 진하게 앓을 수 있게 된다.



<NOBLE SAVAGE>연작의 각 부제들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이러고들 있습니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처럼, 의뭉스러우면서도 분명한 작가의 태도를 담고 있다. 현실 환기적 질문은 직접적인 비난보다 훨씬 또렷한 의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점잖은 선비적 비판이 꽤나 효과적으로 비춰지는 점도 <NOBLE SAVAGE>연작의 독창성에 힘을 보태고 있는데, 그건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먹을 활용하고, 석회를 변용하면서 터득한 이재훈식 ‘프레스코’의 회화적 발현으로 집약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업이 컬러풀한 최근 회화 흐름의 대척점 위를 디디고 선 이유 또한 기법에 대한 치밀한 탐구의 연장선에 있는 걸로 보인다. 초기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동양화의 채색기법을 통한 컬러의 활용도를 떠올려본다면, 많은 연구와 선회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드러내고자 했던 세계성이나 시대적 인식 또한 범용성을 수반한 섬세한 줄거리를 통해 흡입력을 극대화 하고 있다. 이를테면 진보한 사회라는 가면을 쓴채, 가장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것인데, ‘익명성과 비루한 자아’를 통해 펼쳤던 시기(2006년)에서 시작해, ‘야만적 귀족성’을 통한 메시지 수혈방식으로 진화,확장 된 것으로 정리 할 수 있다. 시각화 구현 방식에 있어서는 스스로의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견고한 기초 부지를 결코 도외시하지 않는다.



 
이재훈은 중앙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금호미술관 등, 다수의 개인전을 통해 회화의 물성에 관한 집요한 탐구와 예리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해왔다. 국립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고양스튜디오’에 입주한 이재훈은, 1981년『청년 작가』전으로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 『2008 젊은 모색展』에도 선정,전시 된 바 있다.




Lab DotlineTV 디렉터 / 독립큐레이터, 문예진
(주)샘표식품의 공장미술관인 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재직 / DotlineTV기획,제작
2009ATU,2010ATU 기획 및 감독(KT&G상상마당,아트하우스모모) / 굿모닝신한증권갤러리 개관전
외 다수의 큐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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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tlin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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