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2013. 3. 8. 04:39

차갑고 아픈 철판회화, 조현익

일부, 철판에 그림 그리는 작가,라는 표현을 쓴다. 또 일부 클림트의 모방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굉장히 원시적인 접근이다. 구상이니까, 혹은 비구상이니까 동류의 예술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게 없다.

조현익의 철판회화는 차갑고 아프다. 더 냉정히 얘기하면 철판 속 여인은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처연하다. 아름답진 않다는 말이다. 휘청이는 머리칼들이며, 부식된 금속의 기운이 춥고 외로운 정서를 형성해서이다. 2006년 개인전에서 절반 이상의 신작을 발표했던 그는, 다작과 속작의 대가였다. 그런 지점에서 그의 작품은 오히려 앤디워홀의 기계적 복제에 가깝지만, 팝아트의 대중성과는 천리길 떨어져있다. 출력한 여성의 사진을 철판에 대고 신나로 문지르는 방식은 팝아트의 생산방식에 닿아있음은 명백하지만, 여성의 모양새가 복사되고 대충의 윤곽과 음양이 만들어지면, 기계적 반복의 정반대에서 그의 창작은 비로소 활력을 얻는다. 판화적 방식으로 물꼬를 트지만,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고전적 회화들의 재현방식이 확고해지는 것이다. 다시말해, 고적의 복귀라고 명명할 수 있지만, 그것이 생산되는 방식은 또 산업적 방식에 일부 닿아있어, 고전의 정신이 현대의 옷을 입었다고 해야 공정하다.

철판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한때 그의 첫사랑이기도 했고, 돈을 주고 구한 모델이기도하다. 그 여성은 각각의 철판위에 매번 다른 인물로 환생하고 그 철판만의 삶을 구현한다. 벌거 벗겨진 여인들만을 다루는 이유로, 나는 한때 그의 성향에 약간의 의심의 눈초릴 가진 적이 있다. 현대 Artwork에서 누드여인이란 모티븐 더 이상 각광받는 꺼리는 아니다. 더군다나, 외형의 해체도 아니고, 정직한 구현을 택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좀 구식으로 치부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음에도, 이 젊은 작가가 나체의 여인들을 놓지 않는 데에는 그만의 명분이 있었다. 여성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가장 완전한 장르의 정점 혹은 가장 순결하고 창조적인 대상의 완결,같은 것이다. 학문적으로 흔히 동류로 정의되고 해석되어지는 땅,이라는-나는 이 이론과 해석에 개인적으론 동의하지 않는다-맥락에 여성을 위치시키는 것에 조현익도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현대 매체 속에 등장하는 성상품화된 여성의 표상만은 아니란 것이다. 혼란의 시기에 영웅이 필요한 것처럼, 혼탁한 존재들이 난무하는 세상엔 때로 완전무결한 존재를 갈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우리의 갈구를 먹고 힘을 얻는다.

그가 자신의 작업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모든 정서적 운동은, 자신의 내면에 전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동양적 수행의 층위들에 위치하고 있다. 조현익은 그것을 이해받고 공유하는 것에 큰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보여진다. 전사된 이미지들을 문지르고, 바르고, 얼룩지우면서 체험하는 자기성찰같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흔히 현대 아티스트들이 곧잘 빠지곤 하는 자기내면화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업의 월등한 점이다. 하여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의 단계에서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창작에 있어, 특히나 사회의 지표인 미술작품에 있어서,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지점이다.

지금도 그의 작업실에선 다 자란 여성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환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견뎌내겠지. 이왕이면 좀 행복하면 좋겠다,라는 이 4차원적인 생각은 뭐람.




l 닷라인TV 디렉터 / 독립큐레이터, 문예진
(주)샘표식품의 공장미술관인 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재직 / 닷라인TV기획,제작
2009ATU,2010ATU 기획 및 감독(KT&G상상마당,아트하우스모모) / 굿모닝신한증권갤러리 개관전
외 다수의 큐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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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dotlin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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