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

징그러운 동어반복으로 짜여진 불편한 풍경(오수연)

curatinglab 2013. 3. 8. 04:41

징그러운 동어반복으로 짜여진 불편한 풍경
오수연
 

매체를 활용하는 수사법에서 복제 혹은 동어반복은 비교적 설득에 순조로운 편이다. 21세기 키워드인 나노와 복제 그리고 네가티브로 역할하는 편집증적 도상은 현대 파인아트의 정형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초소형 인형 제작을 수면화시켰던 함진, 이동욱, 최수앙은 이런 시류에 수혜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노(nano) 이데올로기가 창작의 언어에 끼친 축소 지향적 풍토는 소형화되는 IT, 그 시대적 추세와 결부되어있다는 점에서 유연성 있는 반영이다. 또한 공간을 압도하지 못하는 결점을 보완키 위한 편집증적인 복제와 반복법 또한 충분히 운명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파인아트의 현대적 흐름과 배경의 맥락으로 진단할 때, 오수연의 작업은 상투성 짙은 조각 작업이다. 하지만, 흙을 사용하여 구운 소형 인간의 형상은 단조롭고 지루한 외관을 가진데다가, 동시에 징그럽게 밀집되어있는 군상들은 하나의 인물상을 떠올리기보단 차라리 풍경이 되고 있다. 그것이 나노열풍을 이끌었던 기존의 작가군과 차별화되고 심지어 확장된 언어 발굴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풍경을 만든 것은 철저히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출발한다. 누군가의 시점에서든 가능할 지점,이 아니라 커다란 세상의 풍경 안에서 그저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을 인물입자로 몰입시킨다. 한편, 작가의 이런 ‘관조적 태도’는 획일적,반복적 언어의 유형안에서 작가의 보호막 같은 것으로 작용하는데, 큰 시스템의 규율에 대항하기엔 미미한 존재로서의 자각과도 같아 보인다. 쓸쓸한 귀결이지만 냉엄하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무미건조한 인간 무리는, 개인이나 생명이기보단 풍경의 한 조각, 혹은 현상의 일부분이라는 관념에서 파생되는 것이 오수연 작업의 큰 골격이다. 그래서 작고 징그럽고 덩어리로 보이는 이 불편한 풍경은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데서 매우 아이러니하다. 생략과 반복, 추상적 접근법을 택했던 것이 오히려 그 반대의 리얼리티를 야기했다는 지점에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오수연이 세상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오수연은 이화여자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2003년 관훈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이후 2009년까지 세 번의 개인전을 치루었고 , ‘숨.쉬다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 작업에서 그려낼 수 없었던 스케일의 공동 작업들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공공성이 강한 이 프로젝트들은 영속성이 없는 대신, 개인 작업에서 섭취하고 소화하지 못했던 영양분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게 한다고 그녀는 얘기한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그녀의 반복작업들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가 않나보다,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녀의 작품과는 매치되지않는 호방한 성격과 커다란 웃음소리에 나는 그만 식겁을 했더랬다. 유쾌하지만 왠지 스릴러영화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게다가 ‘현실성 없는 남편’이었기에 자신을 선택해준 것 같다,라는 신혼중인 그녀 말이 1년 동안 내 귓전을 맴돌았었다. 오수연은 유머든 작품이든 임팩트를 아는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역사적 멘트였다. 왠지 뒤 돌아서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할 것 같은데.



 
Lab DotlineTV 디렉터 / 독립큐레이터, 문예진
(주)샘표식품의 공장미술관인 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재직 / 닷라인TV기획,제작
2009ATU,2010ATU 기획 및 감독(KT&G상상마당,아트하우스모모) / 굿모닝신한증권갤러리 개관전
외 다수의 큐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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