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

폭로를 통한 치유와 해체를 통한 복구(오석근)

curatinglab 2013. 3. 8. 05:00

폭로를 통한 치유와 해체를 통한 복구, 오석근 

트라우마(Trauma)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심리학, 정신병리학과 같은 영역들의 탐구가 공격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은 그만큼 공동체 속의 ‘객체’가 화두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살자의 급증 현상이나 기괴한 비현실성과 절망, 도착증세의 만연, 싸이코패스의 급증, 이런 이상 징후들은 개인과 맞물린 사회적 치유와 긴밀하게 엮인 문제이기에, 안팎과 이기(理氣) 등의 전방위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석근의 사진작업은 ‘고백’인 동시에 ‘폭로’이고, ‘상처’인 동시에 ‘치유’이다. 유년시절의 충격적 기억을 복구하여 현재의 공간에 대치시킨다는 점에서 고백이지만, 각종 드라마틱한 장치를 설치하는 이미지 기술법들, 이를테면 초등학교 교과서 안에 살던 ‘철수와 영희’를 소환하여 ‘탈선’으로 주입되었던 각종 시츄에이션을 여과없이 표면화시킨다는 점에서는 ‘폭로’라는 것이다. 그건 우리 유년의 관습적 교육과 그 사각지대를 고발하고, 고백과 폭로를 통한 치유의 병리학을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오석근은 교과서(Text book)시리즈를 통해 80,90년대를 지나온 유년의 단상-탈선으로 주입되었던-을 재구성하고, 교과서가 가졌던 강제와 관습을 전복하는 번외편을 만든다. 그가 재구성한 이 교과서 속 우리의 ‘철수와 영희’는 해맑은 얼굴의 인형탈을 쓰고 부탄가스를 마시며 첫경험을 하거나, 영희의 속옷에 손을 집어넣고 포르노그래피를 보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다. 그리고 그들의 행각이 진행되는 물리적 배경은 한국의 고질적 문제들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어느 음습한 장소다. 이 극단적 시각의 배치는 우리 성장기 전면을 부정하도록 알고리즘을 형성하고 공동체(사회)시스템에 대한 도덕적 기대를 뒤흔드는 기폭제로 작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 국가와 개인간의 트라우마가 어떤 메커니즘(mechanism)으로 작동하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상술해내기 위한 최적의 장치(dispositif)라는 의미다. 개인과 국가(사회)의 관계설정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분별한 개발이 난무한 도시공간들, 비정상적 압축식 경제성장-고도의 성장이라 상찬되곤 하는-이 낳은 ‘사태’의 현장들이 그 출발선이다. 개인과 국가, 그 성장사의 모순과 상쇄를 단편화함으로써 개인의 유년기를 되짚고 동시에 그 기억을 존재하게 했던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적 작용들에 대해 환기하게 하는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전제하지 않아도, 유년기의 기억들이 가진 보편성들도 있다. 금지된 것에 관한 무한한 탐구심, 낯선 곳에서 부모(보호자)의 손을 놓칠 때의 위기감, 옷장 안에 들어가 편안함을 느꼈던 하루, 어른들이라는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 찾기 등, 철저한 유년의 보편성을 말초적으로 건드려주는 한 축도 분명 유효하다. 더불어 공동체인 동시에 개인이면서 과거인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철수와 영희는 나와 집단, 그 모든 의식 속의 기표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 속의 세상은 요즘말로 ‘토 나오게’ 밝고 아름답다. 그렇다면 이 번외편의 교과서가 각성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햇빛이 만들어주는 그늘? 그 그늘의 실체? 혹은 프로파간다의 실체와 사회(국가)로부터 받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 아니면, 억제되어 왔던 개인의 욕망?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갈등? 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 오석근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개인에서 출발하여 방사형으로 확장되는 섬세한 내러티브다. 촘촘한 그물망으로 짜여져 해체할 수 없는 상호관계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그가 다루는 화법의 주요 지점이기 때문에 다면적이고 복합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오석근은 80,9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주변인들로부터 어린시절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사례들과 그 이유에 대해 조사하고 수집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생에게 칼을 들었던 무시무시한 기억, 비오는 날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던 기억이나 성추행 당한 기억, 주로 음울하고 충격적인 이 기억의 편린들을 재구성한 것이 바로 잔혹
교과서(Text book)다. 오석근은 그렇게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장소-인천과 부천 등의 연안부두를 중심으로-과거를 해체하고 복구한다. 그의 유년인 동시에 한국의 유년, 나아가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과거(동시에 현재)들을.

 
현) Lab DotlineTV 디렉터 / 독립큐레이터, 문예진

(주)샘표식품(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 DotlineTV기획,제작
2009ATU,2010ATU 기획 및 감독(KT&G상상마당,아트하우스모모) / 굿모닝신한증권갤러리 개관전
외 다수의 큐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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