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2013. 3. 8. 05:05
원본의 퇴행을 통한 새로운 리얼리티,권아람


 
권아람_공진화 Coevolution_단채널 비디오, HDV_00:02:40_2009


권아람의 미디어아트는 이미지와 시간을 자르고 재배열하는 영상 어법을 사용하는데, 주로 디지털 스캐닝을 통해 대상을 복제, 왜곡시킴으로써 순차적 시간을 비웃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는 공간과 대상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뿐 아니라, 정형화된 서사를 혼란시키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전위적 화면이 작가의 혹독한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인데, 디지털 테크닉을 구사하는 영역에서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테크놀러지의 영향력 아래 창작에 있어 노동의 위상과 의미가 하락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권아람의 미디어아트에서 수반된 지독하고 지루한 ‘노동’은 유쾌한 반전이다. 작가와 테크니션이 호흡을 맞추는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사례들에서처럼, 예술품의 가치가 기술력 노동력의 의미에서 한 발짝 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권아람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고전적 노동이 하이테크놀러지를 활용하는 지금의 미술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얼굴, 손가락 등의 신체를 엑스레이 사진을 찍듯, 몇 백장의 디지털스캔 작업을 통해야만 작품의 재료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반복 수행을 통해 깨닳음을 얻는 동양적 태도에 닿아있어, 디지털아트의 다른 재미와 시각을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디어아트로 분류되는 작품들의 대다수가 무빙이미지, 필름 쪽에 가까운 것은 호주나 일부 유럽의 작품들과 견주어 재미있는 현상이다. 미디어아트는 일반적으로 테크놀러지 혹은 움직임을 통해 공간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작품의 의미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 등을 모두 작품의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아람의 작업은 고전적 비디오 아트와 현재의 미디어아트 경계에서 영리하게 유영하고 있는 것이다. 
 

                     

권아람_손가락 꽃 Finger Flowers_단채널 비디오, HDV_00:03:00_2009


 

작품에서 유도하는 ‘혼란’은 스캐너와 신체가 접촉하면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연한 움직임 혹은 의도된 움직임으로 인해 원본의 첫번째 왜곡을 초래하고, 이 변질된 이미지를 디지털 수작업을 통해 해체 재조합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원본의 의미를 탈락시킨다. 작가는 이것을 '리얼리티'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으로 간주하고, 원본의 퇴행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있다. 
사진 작업에서 다루어지듯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 것이 스캔작업의 묘미다.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구축된 이 동양적, 전위적 화면에서 ‘리얼리티’를 의심하는 태도를 발견하는 것은 예정된 인과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처음부터 잘못 입력된 ‘이미지’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의 현실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작가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수백번의 스캔작업을 통해 원본의 무의미를 각성하게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닷라인TV와 함께 문화잡지 VoiLa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현) DotlineTV 디렉터 / 독립큐레이터, 문예진

(주)샘표식품(샘표스페이스) 큐레이터 / DotlineTV기획,제작
2009ATU,2010ATU 기획 및 감독(KT&G상상마당,아트하우스모모) / 굿모닝신한증권갤러리 개관전
외 다수의 큐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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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otlin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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